2026. 9. 25. 20:29ㆍ월령별 발달

오늘이 추석이지만, 저희 집은 어제 이미 명절을 다 지냈습니다. 아이 부모가 맞벌이로 근무 일정이 빠듯하다 보니, 며칠 앞당겨 모이는 게 저희 집 방식이 됐거든요.
당일에 모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형편에 맞춰 유연하게 지내는 것도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저희처럼 명절 형식을 예전만큼 고집하지 않는 집이 확실히 늘어난 것 같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전국 1,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2026년) 추석에 차례를 지낼 예정이라고 답한 가구는 27.3%에 그쳤습니다.
2025년 40.4%, 10년 전인 2016년 74.4%였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까지 줄어든 셈입니다. 저희 집안처럼 형제끼리도 방식이 갈리는 게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걸 숫자로도 확인하게 됩니다.
▶ 명절은 자식 사정에 맞춰, 제사는 마음으로
어제 손주가 왔는데, 기침을 콜록거리면서도 할머니랑 노는 게 그렇게 좋았는지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아픈 아이를 붙잡고 그만 놀자고 할 수도 없어서 놀아주다 보니, 정작 명절 음식 준비할 시간은 훌쩍 줄어들었습니다.
손에 익은 전 몇 가지, 나물 몇 접시로 단출하게 상을 차렸는데도 아이가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형님댁에서 이번엔 제사를 지내지 말자고 먼저 말씀해주신 덕분이었어요. 저는 그 결정에 토를 달 입장도 아니고, 사실 통보에 가까운 이야기라 더 그랬습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그해부터 형님댁은 제사도 차례도 지내지 않기로 하셨고, 저희 집은 지금도 제삿날과 차례를 절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같은 집안 안에서도 이렇게 방식이 다른 걸 보면, 집집마다 사정과 마음이 다르니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마다 제가 늘 떠올리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자식은 잘 키워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 "잘"이라는 게 뭐든 다 해주고 맞춰주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 키운다는 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옆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명절을 어떻게 지내느냐, 제사를 어떤 방식으로 모시느냐도 결국 그 연장선 같습니다.
▶ 할아버지를 위한 깜짝 생일, 그리고 사투리 한마디
저희 집은 할아버지 생신이 추석 딱 일주일 뒤라, 명절 때마다 미리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하하는 게 자연스러운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손주는 이 순서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밥을 먹다가도 "촛불은 언제 해요?" 하고 몇 번씩 물어봅니다.
사위가 사 온 케이크는 가족이 한번에 먹기 딱 좋은 작은 사이즈였는데, 할아버지가 혹시 서운해하실까 싶어 사위가 매번 이렇게 챙기는 걸 보면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아무도 서운해할 사람 없는데, 그 마음 씀씀이가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집니다.
작은 케이크 하나에도 이렇게 마음을 담는 걸 보면, 명절이란 게 꼭 거창한 음식과 격식이 아니라 이런 자잘한 정성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날 저녁엔 웃픈 일도 있었습니다.
지인이 선물해 준 막걸리를 평소엔 입에도 안 대는데, 이날은 딱 한 잔 마셨다가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워야 했습니다.
하품을 하며 "아이고 힘들다" 하고 누워 있으니, 손주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할매, 어떻게 하노" 하고 사투리로 묻는 게 아니겠어요.
그말투가 어찌나 능청스럽고 어른스럽던지, 저는 웃음이 터져서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 살살 불다가, 온 힘을 다해 — 아이가 이미 아는 배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서, 손주는 할아버지를 위한다고 촛불을 살살 불었고, 할아버지도 손주를 위한다며 마주 살살 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촛불이 하나씩 겨우 꺼져갔지요.
옆에서 보다 못한 제가 "야야, 세게 불어라" 하고 한마디 하자, 그제야 손주가 온 힘을 다해 한 번에 촛불을 다 꺼버렸습니다.
그 짧은 순간을 지켜보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놀랐습니다. 이 아이가 이미 "상대를 배려한다"는 게 뭔지 알고, 그걸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는 걸요.
31개월 된 아이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도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로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사투리로 정확한 상황과 감정을 담아 말하는 건 어른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육아정보 매체 매일아이에 따르면, 25~30개월 무렵 아이들은 이제 다른 사람의 존재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지는 시기라고 합니다.
손주가 할아버지를 위해 촛불을 살살 불어준 것도, 어쩌면 이 시기에 자연스레 자라나는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이 행동으로 먼저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말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 스스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미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순간들을 보고 있으면 저는 책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좋은 책 한 권은 그 사람의 인생에 많은 것을 안겨주는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 상황을 이해하는 법까지도 책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이야말로 인생을 바꾸는 가장 좋은, 그리고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손주가 자라면서 이런 마음결을 더 넓혀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곁에서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고 싶습니다.
오늘 같은 명절, 형식보다 마음이 먼저인 하루였습니다. 날짜가 어긋나도, 제사 방식이 달라도, 결국 중요한 건 함께 모여 서로를 헤아리는 그 마음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들 넉넉하고 평안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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